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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p43 ~ p46

Part 1.

(...)

"섰거라. 귀 큰 어린 놈아"

 귀담아 들으니 겨우 알아들을 만큼 낮았지만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허름한 차림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늙은이였는데, 별나게 희고 긴 수염에도 불구하고
벼로 기억에 없는 모습이었다.
(...)

"어르신 무슨 일이십니까?"
"다리도 없고 배도 없으니 이 늙은 것이 어떻게 건너란 말이냐? 네놈이라도 업어 건네다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마치 유비가 다리를 부수고 배를 없애 버리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그같은 늙은이의 말투가 다시 귀에 거슬렸으나 유비는 말없이 건너온 냇물로 다시 들어갓다.
상대는 늙은이인데다 자신은 이미 젖은 몸이었다.
너무도 당당한 그 늙은이의 요구도 예사롭지 않았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까닭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한 번 젖은 몸이어서인지 물은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비는 낯빛도 변하지 않고 건너가 하인이라도 부리고 있는 듯한 그 늙은이를 들쳐업었다.
(...)
 또래에서는 힘깨나 쓰는 유비였지만 개울을 다 건넜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그 늙은이를 개울가에 내려놓은 뒤였다.

"이런 내 정신 보게. 보퉁이를 저쪽에 두고 왔구나. 네놈을 부르는 데 급해서 그만......."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유비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다시 나무라는 투로 하는 말이었다.
그제서야 유비는 노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흔한 유건하나 쓰지 않은 누더기 차림이었지만 어쩐지 민촌의 무지렁뱅이 늙은이 같지는 않았다.
(...)
"이런 멍청한 녀석 같으니. 너는 내가 보퉁이를 두고 왔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유비가 얼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늙은이는 한층 큰소리로 나무랐다.

 "네가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이냐? 잔말 말고 나를 업어라."
 
 그러자 어지간한 유비도 은근히 부아가 일었다.
(...)
그러나 유비는 다시 말없이 그 늙은이를 없었다.
(...)
 다행히 그 늙은이는 한번 더 냇물을 건너갔다 오는 것으로 더는 유비를 괴롭히려 들지 않앗다.
그 대신 냇가의 마른 풀위에 털썩 앉으며 전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유비라고 합니다."
"좋은 상(相)이다."
"무슨 말씀이온지......"
"만 가지 상 가운데서도 심상(心相)이 제일 중하다는 뜻이다."

 늙은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험한 눈길이 되어 다그쳤다.

"네놈은 혹시 나를 황석선생쯤으로 넘겨짚은 거 아니냐?
그리하여 장자방처럼 천서라도 얻어걸릴까 하여 내게 이리 인심을 쓴 것이렷다?"
(...)
 유비가 부드럽게 웃으며 받았다.

"옛 일은 다만 옛일일 따름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 어찌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는 어째서 두 번째로 나를 업고 건널 생각을 했느냐?
무엇을 바라고 한번 더 수고로움을 참았더냐?"

 늙은이가 다시 살피는 눈길로 돌아가 유비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제서야 유비도 그 늙은이의 두 눈에서 심상치 않은 빛을 알아보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잃어 버리는 것과 두 배로 늘어나는 차이 때문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건너기를 마다하게 되면 첫번쨰의 수고로움마저 값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한번 더 건너면 앞서의 수고로움도 두 배로 셈쳐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늙은이의 눈에서 한층 강한 빛이 뿜어나왔다.

"네 나이 올해 몇이냐?"
"열일곱입니다."
"벌써 그걸 알고 있다니 무서운 아이로구나"
"네.....?"
"그게 바로 개 같은 선비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인의(仁義)의 본체다.
그걸로 빚을 주면 빚진 자는 열 배를 갚고도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그걸로 다른 사람을 부리려 들면 그 사람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일하게 된다."
"......"
"나도 네게 빚을 졌으니 호된 값을 물어야겠구나."
"그런 뜻이 아니옵고......"
"하나 일러주마. 그걸 쓸 때는 결코 남이 네가 그걸 쓰고 있다는 걸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유비가 빙긋이 웃었다.

"저는 저 자신도 그걸 잊고자 합니다."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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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큰멀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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